Chez moi
여행의 이유 본문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나의 여행의 이유는 무얼까 성찰하게 된다.
작가의 말 대로 의무의 공간인 집을 벗어나 일상이 부재한 곳으로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우리는 일상에 널려있는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늘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압박감으로 느껴져 피곤하기도 하다. 안온한 집에서 편히 쉬는 것도 좋지만, 집에서 안온함을 느끼려면 우선 깨끗이 청소하고 쌓여있는 빨래도 하고 다림질도 해야 한다. 또 끼니마다 먹을 거리도 준비해야 하고... 작가는 이것을 '일상은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표현했는데 확 와닿는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 우리는 여행을 그토록 꿈 꾸는 것이 아닐까?
오래 전에 처음 프랑스 여행을 하고 나서 여행은 환상을 깨는 일이고, 깨어진 환상 위에 새로운 환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절감했었다.
책이나 영상 매체를 통해 낯선 장소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갖게되고 그것을 느껴보리라는 기대를 안고 여행을 떠나지만-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추구의 플롯이 아닐까- 막상 가보면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그들의 일상이 묻어 있는 곳이다. 유럽의 고풍스러움이 멋져 보였지만 막상 보면 너무 낡아 보인다던지, 커피 텀블러를 들고 출근하는 뉴요커가 세련되어 보였지만 실제로 보면 삶의 버거움을 안고 있듯이 느껴진다던지 말이다.
그렇지만 여행자는 그곳에서 새로운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서 느꼈던 감동이 미술에 대한 취미를 갖게 만들고, 동유럽에서 산 컵 하나가 도자기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며 내 삶이 좀 더 풍성해짐을 느끼게 된다. 잘 짜여진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여행보다는 예상치 못한 뜻밖의 경험이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그것이 힘들었던 경험일지라도 오랫동안 내 인생의 행복했던 경험으로 저장되게 된다. 대학 시절 계획에 없었던 일주일 간의 무전여행을 35년째 친구와즐겁게 추억하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 그러한 예일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고양되고, 그 고양된 정신으로 우리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며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된다.
여행자가 어디로 여행하느냐에 따라 nobody와 somebody를 선택하여 자신을 드러낸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대자연을 보는 것 보다는 타지에서 사람 사는 모습과 그들이 구축해 놓은 문화를 엿보면서 인간으로서 일종의 동류 의식을 느껴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nobody가 되어 허영과 자만의 태도를 경계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방구석 여행자(armchair traveler)'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그러고 보니 여행 에세이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나도 꽤 적극적인 방구석 여행자가 되겠다.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라는 말에 동감한다. 방구석 여행을 통해서도 잠시 동안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환상을 가질 수 있어, 이 또한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는 또 다시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김영하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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